[기고] 군(軍), 신념과 정직만이 갈 길

민방위 전문강사 / 예비역 육군 소령 김기환
민방위 전문강사 / 예비역 육군 소령 김기환

'12·3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의 축, 민주주의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그 결과, 대통령은 탄핵됐고, 현재 사회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역사를 통해 시민들이 이룩해놓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뿌리가 굳건하고 문화가 잘 정립돼 있어서 그런지, 혼탁해진 물이 자연스레 정화되듯,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국가와 군에 대한 국민의 배신감, 실망감이 상당히 클 것으로 사료된다.

지난 달,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판결문에서 볼 수 있듯이, 계엄 당시, 군과 경찰을 동원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국민이 세금으로 마련해 주고 안보를 위해 정당하게 사용토록 허락받은 무기와 장비가 국회를 포함한 헌법기관을 압박하고 무력화하는 데 오용됐다.

위 탄핵심판과 내란사건 형사재판에서 직접 증거의 한계로 계엄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계엄의 성공을 막은 '3인방'으로 거론되는 이들의 양심고백(증언)이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엄 당시, 그들은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경비단장,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 그리고 뒤늦게 알려진 수방사 작전처장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육사 출신이 아닌 '비육사'를 꼽았지만, 필자는 그것보다 그들의 불굴의 신념과 선량한 양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국군통수권자, 국방부장관, 직속상관인 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군인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이유는 국군은 국민의 군대이기 때문에, 국가 방위, 자유 민주주의 수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만 했다.

이제 막 군문을 들어선 이들도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관건은 이것을 얼마나 자신의 내면 속 깊숙이 신념화, 체질화하고, 이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한 치의 망설임없이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느냐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군 간부를 선발할 때부터 정신이 건강하고 생각이 올곧은 자로 선별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그 후 양성과정에서도 자신의 영리영달이나 특정인의 불건전한 의도에 동조하지 않고, 최상위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비굴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묵묵하게 임무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군인은 이러한 자세가 항시 몸에 배여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3인방이 불의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국민에게 진실만을 말해주길 바란다. 필자와 동기인 수방사 경비단장은 대학시절 군사학교에서 함께 값진 땀방울을 흘리고 훈련을 받으면서 몸소 익혔던 장교의 도(道)와 정의·정도(正道), 그 때 품었던 초심을 지금껏 지키고 있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존경심이 우러났다.

또 수방사 작전처장은 20년 전, 참모장교였던 필자와 한 후방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당시 부대와 부하를 위해 참신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소신이 있었음은 물론, 격오지(隔奧地) 부대의 중대장을 하면서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수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령,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종교활동에 갈증을 느끼는 부하들을 위해 종교방송 채널을 연결해 여건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랬던 모습이 장군을 바라보는 고급장교인 지금까지도 투영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형기 대대장은 간부사관 출신으로 병사, 부사관, 장교의 신분을 모두 거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내란사건 재판에 나와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 조직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고 했다"라고 증언해 주목받았다.

중용 23장에 나오는 구절처럼, 그는 20여 년의 군 생활 동안, 한결같이 자신의 소임을 착실하게 해왔고, 그것이 언행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것은 아닐까. 계엄 당시, 그와 부하들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수행하지 않아 결국 계엄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위 사례를 놓고 보면, 이들의 장교 후보생, 초급장교 시절의 자세가 현재의 고급장교 때까지 변함없이 맞물려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첫걸음, 첫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2020년, 미국에서도 군인들이 대통령의 위헌적 지시에 항명한 사례가 있었다. 인종차별에 분노한 시위대가 백악관으로 몰려가자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 출동을 명했지만,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그 부하들은 항명했다. 그들은 수정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분명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우리 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이 있듯이, 군은 이번 일을 계기로 말로만이 아닌 진정 뼛속까지 혁신해야 한다. 그들이 군복을 입고 있는 이유부터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기본에 충실하고 어떠한 불의한 명령도 고민없이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항명'과 관련한 법령과 제도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완돼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보안을 핑계삼아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국가안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보안이 필요할 수 있지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거나 특정 목적을 위해 남용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한 때 군에서 내걸었던 구호처럼 '했다 치고'가 아닌 모든 영역에서 정직한 풍토,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요즘처럼 다양한 채널로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군의 소극적인 태도는 오히려 유언비어나 왜곡된 정보를 키울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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