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여름철 전력 위기 ‘가스냉방’이 답하다

[에너지데일리 조남준 기자] 한여름 전력 수요가 정점을 찍는 계절, 정부와 전력 당국은 또다시 냉방 부하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오랜 시간 거론돼 온 ‘가스냉방’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력 사용을 줄이면서도 안정적인 냉방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에너지 수급 안정성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급률은 1%대에 불과하다. 왜일까?









여름철 피크 부하 해결책 '가스냉방'...보조금 확대·설치 의무화로 활성화 드라이브



가스냉방은 도시가스 또는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흡수식 냉동기(Absorption Chiller) 등을 활용해 냉방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일반 전기식 에어컨과는 달리, 전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매우 적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여름철 전력 피크 부하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가스냉방 시스템은 일반 전기냉방 대비 최대 90%까지 전력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냉방 수요가 집중되는 대형 상업시설, 공공기관, 병원, 학교 등에서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가스냉방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대표적으로, 신축 공공건물에 일정 규모 이상 가스냉방 설비 설치를 의무화했고, 민간 건물에도 설비 도입 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2024년에는 고효율 가스냉방기기 설치에 대한 보조금 예산이 전년 대비 30% 이상 확대되었고, 냉방에너지 수요 관리 대상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도시가스사들은 기술 컨설팅, 유지관리 지원 등 사후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공공기관 “법적 의무화 이후 전력피크 걱정 사라져”



서울 중구의 D청사(중앙정부 산하기관)는 2021년 신축 당시부터 고효율 가스냉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연면적 1만㎡ 규모의 업무용 건물에 설치된 흡수식 냉동기는 전력 사용량을 기존보다 80% 이상 절감시키고 있다.

시설관리팀 관계자는 “전기식 냉방기 대비 초기 투자비는 높지만, 여름철 피크시간대 전력 사용을 줄이면서 전력요금 체계상 큰 이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공공건물 냉방 에너지 다변화 지침에 따라 도입이 결정되었는데, 실제 운용 후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17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물에 고효율 냉방설비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가스냉방은 주요 권장 대상 중 하나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규 공공청사 중 40% 이상이 가스냉방을 적용했다.



산업계 “운영비 30% 절감… 여름철 정전 걱정 없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복합 상업시설 ‘G몰’은 지난 2022년 대규모 리모델링과 함께 전기식 냉방기를 가스냉방으로 전면 교체했다. 총 2,000RT급 흡수식 냉동기가 3대를 가동 중인 이곳은 하루 평균 냉방 운영 시간이 12시간에 달하지만, 전기요금 부담은 오히려 줄었다.

“냉방을 많이 쓰는 여름철에도 전기 피크 요금 부담이 크게 줄었고, 시스템 신뢰도도 높아 유지보수 비용이 예전보다 20~30% 줄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력 과부하로 인한 정전 리스크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G몰 시설관리팀장은 “초기 설치비가 다소 부담됐지만, 정부 보조금과 장기적으로 절감되는 운영비를 따져보면 충분히 경제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건설사도 주목… 주거·상업 복합단지로 확대 도입

가스냉방은 대형 상업시설뿐 아니라, 주상복합 및 오피스텔 단지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중견 건설사 A사는 최근 수도권 신규 오피스텔 3개 단지에 흡수식 냉동기 기반의 지역 냉방시스템을 도입했다.

A사 관계자는 “입주민 만족도가 높고, 전력계통 연결 부담이 적어 허가 및 인허가 절차도 원활했다”며 “향후 스마트에너지빌딩(BEMS)과 연계한 통합 제어 시스템과 함께 패키지 상품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흡수식 냉동기 제조사인 B사는 최근 냉난방 겸용 흡수식기기를 개발해 중소형 오피스, 호텔, 관공서 등에 공급하고 있다.



B사 기술영업팀 관계자는 “예전엔 설치 공간과 유지관리 이슈 때문에 외면받았지만, 최근엔 고효율·소형 제품이 등장하면서 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특히 ESG 경영을 중시하는 민간기업들이 탄소감축 수단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공급 인프라를 담당하는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산업단지와 상업지역을 대상으로 ‘가스냉방 맞춤형 컨설팅’ 사업을 운영 중이다. 냉방수요 분석부터 설치비 산정, 정부 보조금 연계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기술적 이해도가 낮은 수요자들이 많기 때문에, 단순 홍보보다는 실질적인 기술 컨설팅이 중요하다”며 “지역별 냉방 부하와 가스 공급망을 고려한 최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점이 분명한데, 왜 보급률은 낮을까?

가스냉방은 전기 피크 부하 저감, 에너지 효율 개선, 친환경성 등 여러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정부의 보급 확대 정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보급률은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냉방기기 중 가스냉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2%에 그친다. 수치로만 봐도 아직 일반적인 선택지로 자리잡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저조한 보급률의 배경으로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초기 설치비용이다. 흡수식 냉동기 등 가스냉방 설비는 구조상 부피가 크고 복잡해 설치에 많은 공간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설비와 시공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된다. 단기간 내 비용 대비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소비자와 시설 운영자들이 선뜻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지보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전기 냉방 시스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기술이라는 인식 탓에, 고장이 났을 경우 대응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여전하다. 여기에 '가스는 겨울철 난방 연료'라는 고정관념도 뿌리 깊게 남아 있어, 여름철 냉방에 가스를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이처럼 가스냉방은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투자 부담과 인식 부족, 기술적 장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확산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 위기 시대, 더 이상 ‘대안’이 아닌 ‘필수’

전기요금 상승과 기후위기, 탄소중립 정책 강화 속에서 가스냉방은 점점 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도입한 현장에서는 전력 피크 관리, 운영 효율성, 친환경 이미지 제고 등 다방면에서 성과를 체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스냉방은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구축과 전력계통 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이라며, “지금은 시장 주류는 아니지만, 에너지 전환의 과도기적 해법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남은 과제는 인식 전환과 제도적 연계 강화다. 에너지 전환 시대, 가스냉방은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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